Master Pen Story
 [단편] 만났다 ①
월담백토Oh~No~ 악플은 싫어요~!!
   (2013/08/04 02:45) 추천수 : 0   





 

문득 문득 잊고 지냈다가도 반짝이는 햇살 아래로 비가 내리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소년과 처음 만났던 날도 비가 내렸고, 안녕이란 말도 없던 마지막 만남에서도 비가 내렸다. 그리고, 눈부시게 화창한 6월에 내리는 여우비는 내게 추억이고 약속이 되었다.




“도경아! 너무 멀리가면 안 된다! 여우가 데려갈지도 몰라!”

13살의 나는 상당히 비뚤어져 있었다. 아버지의 회사가 도산함과 동시에 아버지가 보증을 선 친구가 잠수를 타 버리면서 나와 동생은 외할머니 댁에 맡겨졌기 때문이었다. 외할머니 댁은 인터넷도 안 되고 휴대폰 통신도 걸핏하면 먹통이기 일쑤인 곳이라 이전부터 별로 오고 싶어 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갑자기 학교도 못 가게 되자 할 일이 없었다. 집에 있으면 부모님에 대한 원망만 커졌기에 매일 들로 산으로 뛰어다녔다. 할머니와 동생과 함께 식사하기가 싫었던 나는, 배가 고프면 집으로 기어들어와 할머니가 삶아둔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로 끼니를 해결하고 다시 숲으로 들어가는 나날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날도 대충 끼니를 해결하고 나서는 것을 고추밭에 계시던 할머니가 보고 소리치던 참이었다. 늘 무시하고 달려가던 나인데도 꼬박꼬박 저 말만은 잊지 않고 하셨다. 

“언니! 언니! 나도 데려가!”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산으로 들어가 버리자 동생 민경이의 울음소리가 등 뒤로 들려왔다. 매일 무시하는데도 지치지도 않고 쫓아오는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내 감정에는 여유가 없었다. 부모님을 향해 꼬일 대로 꼬여버린 마음은 할머니의 걱정스러워하는 마음도, 혼자 집을 지켜야만 하는 동생의 외로움도 알아채지 못하게 했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때의 나에게 중요한 것은 혼란스러운 내 감정  뿐이었다.
그날따라 속상했던 마음 탓에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흙바닥에 긁혀버린 무릎이나 거친 풀에 긁힌 뺨에 난 생채기도 그리 아프진 않았지만, 때마침 내린 비에 내 처지가 처량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화창한 하늘에 잔잔히 내리는 비였지만 꼼짝 않고 있자니 이내 내 옷을 잔뜩 적셔버렸다. 빗방울이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퍼지는 먼지에 잔기침이 일었지만 난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러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거짓말처럼 울음을 뚝 그쳤다.

“얘, 왜 그렇게 울고 있어? 상처가 아파서 그러는 거야?”

그때엔 왜 그리 자존심이 강했는지 내 치부를 들킨 것 같은 마음에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아 엉망이 되어버린 얼굴과 옷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하지만 아무리 닦아도 빗물에 얼룩만 번질 뿐이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때였다면 절대로 이런 모습 보이지 않았을 테지만, 예쁜 원피스를 입고 깔끔을 떨고 새침을 떨었을 내 모습을 목소리의 주인공이 알 리 없다는 생각이 들자 아무렴 어떻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존심도 별 볼일 없구나.’

난 내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부모님도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어린 감정이 따라주질 못했을 뿐이었다.
엉망이 되어버린 셔츠와 반바지에서 눈을 떼고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나무에 옆으로 길게 뻗은 가지위에 나와 비슷한 또래의 소년이 앉아 있었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웃고 있었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2m 높이의 가지에 반바지만 걸친 채 앉아있는 소년의 모습도 아니었고, 유난히 검은 눈동자를 묘하게 반짝반짝 빛내는 모습도 아니었다. 그 외모가 전에 본 적 없이 잘생겼기 때문도 아니었다. 언젠가 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나, 집 앞 울타리에 심어둔 개나리처럼 노란 머리칼이 나로 하여금 소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였다. 금발도 갈색도 아닌, 완전한 노란색이었다. 
멍하니 소년을 쳐다보고 있자니 아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붉은 입술사이로 가지런한 이가 반짝이는 게 보였다.

“왜 거기서 울고 있냐고. 아파서 그래? 내가 봐 줄까?”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나무위에서 가뿐히 뛰어내린 소년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체육시간에 높이뛰기나 멀리뛰기 수업을 했지만 또래 중에서 그 아이처럼 높이, 그리고 멀리 뛰는 아이를 본적이 없었다.

“어디 봐. 우와! 이 피 좀 봐!”

소년은 다짜고짜 내 팔을 잡아당기더니 상처가 난 곳을 혓바닥으로 스윽 핥는 것이 아닌가. 놀라고 부끄러운 마음에 팔을 확 빼내고 소리를 꽥 질러버렸다.

“뭐야, 너! 왜이래!”
“엄마가 이렇게 하면 상처가 낫는다고 했어. 봐, 깨끗해졌지? 이젠 아프지 않지?”

아이의 가슴을 손으로 떠밀어내는 바람에 소년은 엉덩이를 찧은 채 넘어졌지만 싱글싱글 미소는 여전했다. 내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는 것은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무슨 황당한 소리야?”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상처가 난 팔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상처가 말끔히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 어?”
“거봐. 진짜로 안 아프지? 우리 엄마는 모르는 게 없거든.”
“말도 안 돼!”
“말이 되나 안 되나 한 번 더 볼래?”

소년은 손바닥을 땅에 짚은 채 엉금엉금 다가오더니 이번엔 내 무릎을 핥기 시작했다. 부끄러움 보다는 눈앞에서 벌어진 신비한 일에 입을 벌리고 쳐다보기만 했다. 동영상을 뒤로 감아 돌리기라도 한 것처럼 상처가 서서히 새 살을 틔우는 것을 넋을 잃고 지켜보았다.

“우와!”
“안 아프지?”
“응!”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자 소년이 방긋 웃었다.

“우리 엄만 거짓말 안한다니까.”

개구진 표정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표정은 ‘엣헴! 거봐라!’라는 말이라도 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내 양손에 난 상처를 없애주고는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홱 돌려버리고 말았다. 소년이 몸을 돌려 눈을 마주치니 새카만 눈동자에 빠져버릴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두근거림에 고개를 푹 숙였다.

“여기도 상처가 있어. 나 좀 봐봐. 여기도 치료해줄게.”

손가락으로 뺨과 콧잔등을 가리키던 소년의 입술이 다가오자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 거긴 됐어! 집에 가서 약 바를게.”
“왜? 내가 핥으면 금방 나아. 아프지 않아?”
“괜찮아! 됐어!”

순진무구함의 결정체이기라도 하는 듯 오로지 내가 아픈 게 신경 쓰여 못 견디겠다는 표정의 소년에게 난 신경질을 내고 말았다.

“넌 참 강하구나. 난 아픈 건 못 견디겠던데.”

뒷짐을 진채 돌아서 돌부리를 걷어차는 소년의 뒷모습이 너무도 처연해 소리친 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작은 등에 난 크고 작은 흉터에 놀라 고맙다는 인사나 미안하다는 사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잊어버리고 질문을 던져 버렸다.

“등은 왜 그래? 네가 나한테 해 준거처럼 엄마가 치료해 주는 거 아니었어?”
“아, 이거? 어릴 때는 엄마가 해줬는데 지금은 내가하니까. 아무래도 등에는 혀가 닿지를 않잖아.”
“왜…? 왜 네가 해? 엄마는?”
“없어. 어느 날 사라지셨어.”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돌아서서 웃는 소년의 모습에 화가나 “버림받은 거잖아!”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사라졌다.

“아무렇지도… 않아?”
“에이, 그럴 리가 있어. 처음에는 어찌해야 할 줄도 모르겠고 무서워서 엄마만 기다리며 울었지. 그런데 마루영감이 그러더라. 엄마는 언제나 내 곁에 있다고. 내가 그렇게 울고만 있으면 걱정한다고. 그 얘길 들으니까 내가 너무 싫은 거야. 내가 웃고 즐겁게 지내면 언젠가 엄마가 돌아와서 참 착하다, 참 장하다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지 않을까?”

나는 그 마음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으면.”
“꼭 돌아온다니깐.”

소년은 여전히 웃고 있었고,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이 부럽기도 했다.
비는 어느새 그쳤고 하늘을 쳐다보던 소년이 주머니를 부스럭 거리며 빨간색 열매를 한주먹 꺼내주기에 셔츠를 벌려 받았다.

“나 이제 가 봐야해. 이건 선물. 또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게 뭐야?”
“산딸기. 맛있어. 담에 같이 따러가자.”

소년이 손을 흔들며 더 깊은 숲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난 급한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이름이 뭐야? 난 도경이야! 민도경!”
“난 가람이야!”

그리고, 뭐가 그리 급한지 노란머리카락을 반짝이던 소년은 이내 나무들 사이로 사라져 버렸고, 난 소년이 주고 간 산딸기 하나를 입에 넣었다. 달콤한 향이 입 안 가득 퍼지자 갑자기 눈물이 툭 떨어졌다. 

‘넌 어떻게 그렇게 웃을 수 있니?’

비슷한 처지였음에도, 아니, 내가 더 나은 상황이었음에도 나는 전혀 웃지 못하는데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소년이 이해가 되지 않는 반면 부럽기도 했다. 

‘나도 웃을 수 있을까.’

한동안 소년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던 나는 할머니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할머니, 민경이와 함께 달콤한 산딸기를 같이 먹고 싶어졌다. 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뺨을 스치는 바람은 산뜻했다. 이전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들꽃들은 산들산들 춤을 추고 있었고, 벌과 나비는 꿀을 따기에 바빴다. 
난, 따뜻한 햇살에 내 마음에도 따뜻한 온기가 조금씩 번지는 것을 느끼며 집으로 가는 걸음을 재촉했다.

 

 

 

 

 


 

 

 

얼마만의 단편인가! 두둥!!!
드디어 단편으로 찾아왔네요~
3부작 예정이고요~
빠르면 내일, 혹은 일주일내로 완성할 예정이예요~
할종일 글쓴다고 고생했긔..ㅠ
이새벽에 배고파 죽으려고하는 백토양은 이만 자러 갑니다..ㅠㅠ
앗... 표지도 만들어야지.........;;;

 

 


월담백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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