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Pen Story
 [단편] 만났다 ②
월담백토Oh~No~ 악플은 싫어요~!!
   (2013/08/05 21:50) 추천수 : 0   









“할머니, 가람이라고 아세요?”

“아니, 모르는데. 가람이가 누꼬?”

 

이곳에 내려와 처음으로 대화다운 말을 꺼낸 내게 할머니는 놀란 눈치였지만 모른 척 따뜻한 미소로 입을 열었다.

 

“저기 윗동네 사는 것 같던데, 정말 몰라요?”

“모르겠는데. 요 위로는 집이 없다. 길이 하나뿐인데 누가 들어와 살았음 내가 진즉 알았제. 와, 누구 만났나?”

“네. 내 또래였는데…, 참!”

 

난 저녁을 먹다말고 소년이 준 딸기를 씻어 그릇에 담아둔 게 생각나 냉장고에서 꺼내왔다.

 

“선물로 받았어요.”

“하이고, 산딸기네. 이런 걸 어디서 땄다노. 참으로 탐스럽게 생겼네. 내는 이렇게 탐스런 놈은 처음 본다.”

“맛있어요. 드세요.”

 

그릇을 할머니 앞으로 스윽 내밀자 그때까지 내 눈치만 보던 민경이도 눈을 빛내며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언니, 나도 먹어도 돼?”

“응. 같이 먹자.”

 

할머니와 민경이는 밥을 먹다말고 산딸기를 입에 넣었다. 외할머니 집에 오면서 엄마가 사다 둔 과자도 떨어진지 오래고, 슈퍼에라도 가려면 한 시간을 비포장 길을 걸어내려가 버스로 30분을 더 달려야 했기 때문에 간식거리라고는 별다른 게 없는 터였다. 때문에 새콤달콤한 산딸기는 오랜만에 먹는 별식이었다.

 

“우와, 달다. 언니야, 산딸기 너무 맛있다.”

“이 할미도 이리 단 산딸기는 처음이구나.”

 

두 사람이 너무나 맛있게 먹는 바람에 내가 다 뿌듯해졌다. 하지만 오랜만에 웃는 동생을 보니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동생도 나만큼 힘들었을 텐데도 나보다 더 대견스럽게 이 상황을 견디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민경이가 너무 맛있게 먹기에 내 몫의 산딸기를 민경이에게 덜어주자 할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휴, 우리 도경이 다 컸네. 동생 위할 줄도 알고.”

 

할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에 나도 오랜만에 웃었다.

 

 

 

 

가람이라는 아이를 다시 만나기 위해 전날 올랐던 길을 다시 올랐다. 이번에는 동생 민경이도 함께였다. 매일 집에만 있어 심심했던지 처음 가는 산길인데도 지친 기색도 없이 잘 따라왔다. 게다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흥얼거림도 끊이지 않았다. 화창한 날씨에 햇빛이 따사롭게 따라왔고 나도 기분이 좋아져 동생이 부르는 노래를 속으로 따라 부르고 있었다.

 

“언니, 그 오빠 어떻게 생겼어?”

“잘 생겼지.”

“얼마나?”

 

잘생겼다는 소리에 민경이가 눈을 빛냈다. 쪼그만 녀석이라도 잘 생긴 녀석이라면 마냥 좋은가 보다. 하지만 얼마나 잘 생겼는지는 민경이에게 설명하기는 힘들었다. 호수처럼 맑은 눈망울이 밤하늘의 별만큼 반짝이는 모습이나, 단아한 붉은 입술이 개구쟁이처럼 웃던 귀여운 모습을 하나도 설명할 수 없었다. 당시의 나에게 누군가를 표현할만한 재능이 없었던 이유도 있겠지만,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내 앞가림을 할 수 있게 된 지금도 그 아이를 제대로 묘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신비로운 추억에서 단 하나만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고, 그때의 내가 동생에게 알려줄 수 있었던 것도 그것뿐이었다.

 

“머리가 노랬어.”

“그것뿐이야?”

“…….”

“에이, 뭐 그래.”

“직접 보면 알아.”

 

내 빈약한 설명에 잘생긴 오빠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는지 입을 샐쭉 내밀던 민경은 커다란 강아지풀 하나를 뽑아내더니 마구 흔들어대며 다시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글쓰기라면 상도 몇 번 받아봤던 나였기에 내가 그렇게 어휘력이 부족했던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계속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소년과 처음 만났던 나무를 지나 그가 사라졌던 길을 따라 계속 걸었지만 집도 보이지 않았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점점 울창해지는 나무들은 작은 오솔길을 짙은 그늘로 덮고 있었고, 익숙한 벌레울음소리도 스산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점점 무서워 질 무렵 민경이 입을 열었다.

 

“언니, 그만가자. 나 무서워.”

 

차마 내가 무섭단 말을 할 수 없어 침만 꿀꺽 삼키던 차에 동생의 말은 구원이었다. 하지만, 돌아가자며 대답하려는 순간 숲의 안쪽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동생과 난 걸음을 멈추었고 얼음처럼 굳어버려 꼼짝할 수 없을 때 풀숲을 헤치며 무언가가 나왔다.

 

“앗! 고양이다!”

 

노란색 어린 짐승이 눈앞에 나타나자 동생은 신이 나서 외쳤다. 하지만 내가 본 동물도감에서 그와 비슷하게 생긴 짐승이 있었다.

 

“언니, 고양이야, 고양이. 아니, 갠가?”

 

긴가 민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동생은 내 손을 잡아끌며 그 짐승에게 가까이 다가가려했다. 하지만 내가 민경의 손을 세게 잡아당기자 울상을 지었다.

 

“언니이, 조금만 만져보면 안돼?”

“고양이 아니야. 개도 아니야.”

 

떨리는 내 목소리의 긴장을 동생도 느꼈는지 잡아당기던 손이 주춤거렸다.

 

“그러면?”

“여…우야.”

“여우? 여우가 저렇게 쪼끄매?”

“새끼라서 그래. 얼른 집으로 가자. 근처에 엄마 여우가 있을지도 몰라.”

“언니이….”

 

여우라는 소리에 놀란 민경은 두말 않고 내가 이끄는 대로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려 내려오다 숨을 헐떡이며 뒤를 돌아보니 얼마간 우리를 따라오다 멈춘 새끼 여우가 먼발치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익숙한 눈동자에 놀라 동생 손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민경은 아픈 듯 얼굴을 찡그렸지만 겁에 질렸는지 나보다 앞장서 달리기 시작했다.

 

 

 

 

“할머니, 할머니. 나 여우 봤어!”

 

밭에서 막 들어와 흙 묻은 옷을 벗던 할머니는 민경의 말에 놀라 쳐다보았다.

 

“야가 무슨 소리를 하노. 도경아, 민경이 너하고 갔던 거 아니가?”

“…그랬어요.”

“잘생긴 오빠를 보러갔어요. 그런데 오빠는 못보고 여우만 봤어.”

“하이고, 야들이 뭔 소리를 하노. 위험하다. 이젠 산에 들어가지 말그래이?”

“하나도 안 위험했어. 새끼여우였는데 뭐. 그치 언니?”

 

또박또박 할머니 말에 말대꾸 하던 민경이 나를 쳐다봤지만 난 할머니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가람이와 만나자고 약속했기 때문에 며칠 더 산에 들어갈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안 된다. 며칠 전이더라, 밀렵꾼이 들어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우도 여우지만 밀렵꾼 총에 맞기라도 하면 우얄라꼬.”

“밀렵꾼이 뭔데 할머니?”

“와, 총 들고 다니는 사람 안 있나. 총 들고 다닐라문 나라에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도 없이 멸종위기의 동물들까지 잡아가는 사람들. 작년에 저 아랫동네 동식이 아범도 밀렵꾼 총에 맞아 죽을 뻔 했다 아이가. 그라니 너희도 이제 산으로 너무 돌아니지 말그라. 알았나?”

“응, 할머니.”

 

민경이는 무서웠는지 고개를 크게 끄덕였지만 나는 입술을 꼭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가만 보자. 그라고 보니, 그 밀렵꾼이 여우를 잡았다지. 젖이 불은 게 새끼가 있는 놈인 것 같더라고 사람들이 혀를 찼지. 너희가 본 게 그 여우의 새끼라면 참으로 불쌍하게 됐다. 어미 잃은 새끼가 오래살긴 힘들 텐데.”

 

할머니의 말씀에 숲에서 본 새끼여우의 눈망울이 계속 아른거렸다. 가람이와 묘하게 닮았던 눈망울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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