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Pen Story
 [단편] 만났다 ③ [3부작완결]
월담백토Oh~No~ 악플은 싫어요~!!
   (2013/08/06 23:20) 추천수 : 0   




 







그 뒤로 며칠 동안 가람이와 만났던 나무를 찾아갔다. 하지만 녀석을 볼 수는 없었다. 내가 왜 소나기가 내리는 날에도 그렇게까지 가람일 찾아다녔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한 번쯤은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었다. 그러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고, 10월 말 쯤 부모님이 우리를 다시 서울로 데려 가실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엄마와 통화를 하고 나서야 어느새 계절은 여름을 지나 가을의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여름이었고, 그 한 여름에 낮도깨비라도 만나기라도 했던 것처럼 가람이와의 만남은 꿈인 듯 기억마저 조금씩 흐려져 갔다.

며칠 뒤 부모님이 내려오셨고 새카맣게 타버린 나와 민경일 보고 깜짝 놀라셨다. 민경인 엄마, 아빠와 다시 살게 됐다고 마냥 좋아했지만 할머니는 꽤나 섭섭하셨던 모양이었다. 입으로는 “잘됐다, 잘됐다”를 반복하셨지만, 돌아앉아 눈물을 훔치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할머니, 울지 마세요. 저랑 민경이 방학 때마다 놀러 올게요.”

“우리 도경이, 오야, 할미가 맛있는 거 사다놓고 기다릴게.”

“엄마, 미안해. 아쉬울 때만 찾아와서.”

“아이다. 내 딸이 힘들다는데 내 뭔들 못해 주겠노. 나는 야들이랑 지내는 동안 즐거웠다. 더 못 도와줘서 미안하데이.”

“장모님, 무슨 말씀이세요. 벌써 많이 도와주셨는걸요. 귀한 딸 데려다 고생시켜서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잘 살 테니 걱정 마세요.”

“민 서방, 내는 걱정 안한다. 앞으로도 힘 내그라.”

“네, 장모님.”

 

오붓한 이야기가 오고가는 동안 마루에 앉아 삶은 감자를 베어 물던 민경이 소리를 질렀다.

 

“비 온다! 엄마! 아빠! 언니! 할머니! 신기하게 햇빛도 쨍쨍한데 비가 와요!”

 

민경의 부름에 문을 연 엄마가 하늘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머, 정말이네. 호랑이가 장가가나 보다.”

“호랑이가 장가를 가?”

“여우가 시집을 간다는 소리도 있었지. 여우비는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

 

엄마 옆으로 아빠도 고개를 내밀고 미소를 지었다.

 

“그럼 여우랑 호랑이랑 결혼하는 건가?”

 

민경인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고민하는 눈치였다. 부모님에게 가로막힌 문을 비집고 나온 나도 마루위에 걸터앉았다. 후두둑 후두둑 가볍게 손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받던 나는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어 서둘러 신발을 신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서울로 가야했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다.

 

“도경아, 어딜 가려고. 버스시간 얼마 안 남았어.”

“도경아, 비오잖아. 그러고 나가면 어떡해!”

 

부모님의 목소리가 등 뒤로 들렸지만 난 대답할 겨를조차 없었다. 새 옷과 새 신발이 비에 젖고 흙이 묻어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단 하나 걱정되는 게 있었다면 금방이라도 비가 그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숨이 턱까지 막혀 죽을 것만 같을 때 오솔길 끝에서 달려 내려오는 가람이가 보였다. 활짝 웃는 모습으로 빛나는 노란 머리카락을 흔들며 달려오는 가람인 순식간에 내 앞에 섰고 심호흡을 몰아쉬는 내 손을 잡았다. 여전히 걸치고 있는 것이라고는 반바지 하나뿐이었고 맨발엔 상처하나 없는 것이 신기했다.

 

“드디어 만났다.”

“학학…! 내… 내가 할 소리야. 학학! 내가… 널 만나려고 얼마나 산을 올랐는데. 무려 세 달이야. 하아―.”

 

겨우 호흡이 진정된 난 가람이에게 눈을 흘겼다.

 

“미안. 내가 나올 수 있는 날이 얼마 되지 않아서. 지금도 얼른 돌아가 봐야해. 늦게 가면 마루영감한테 얻어맞아.”

“벌써? 딸기 따러가기로 약속했잖아.”

“미안. 이젠 딸기는 힘들어. 계절이 지났거든. 대신 이걸 줄게.”

 

가림인 딸기를 주던 날처럼 바지 주머니를 부석거리더니 무엇인가를 꺼냈다. 길쭉한 열매는 갈색의 껍질을 살짝 벌리고 있었는데 생김이 바나나를 생각나게 했다.

 

“뭐야? 이것도 먹는 거야? 꼭 바나나 같이 생겼다.”

 

두 손 가득 가람이 주는 대로 받아들어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니 수북이 쌓인 열매를 조심스럽게 이리저리 살펴보기만 했다.

 

“와! 달콤한 향기다.”

“으름이라는 거야. 아주 맛있어.”

 

가림인 열매 하나를 까서 내 입에 넣어주었다. 손가락 두, 세 개를 합쳐 놓은 것처럼 생긴 열매는 씨로 가득 차서 먹기는 좀 불편했지만 바나나보다 더 달콤한 맛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단맛에 즐거웠던 기분도 잠시 가람의 말에 나는 울상을 지어야만 했다.

 

“이제 가봐야 해. 다음에도 맛있는 걸 찾아올게.”

 

떠나려는 소년을 잡고 싶어도 으름으로 가득 찬 손은 꼼짝할 수 없었다.

 

“가람아, 가람아!”

 

조용한 숲은 바람을 따라 비를 걷고 있었고 그 끝에 서있던 가람이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또 만나자. 이번엔 내가 너희 집으로 마중 갈게.”

 

신나게 손을 흔들고 돌아서 달리는 가람의 엉덩이에 노란색 꼬리가 튀어나왔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머리로 알고 있었지만 마음속에서는 어느새, 언젠가 보았던 새끼 여우와 가람이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었다. 여우비가 내려야만 만날 수 있었던 소년 가람이는 머리카락과 똑같은 색으로 빛나는 꼬리를 흔들며 깡총 깡총 뛰어 숲으로 사라졌다. 

 

“난 오늘 진짜 집으로 가는데……, 더 이상 여기는 내 집이 아니란 말이야.”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한동안 그 자리에서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오늘이 가람이와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소중한 선물을 떨어뜨릴 새라 들고 있던 팔이 흔들릴 정도로 한참을 울고 나니 나를 찾으러 나왔던 아버지가 당황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딘가 다친 데가 없나 곳곳을 살피는 아버지의 모습에 설움이 북받쳐 내 울음소리는 더 커져 버렸다.

 

 

 

 

그때로부터 벌써 15년이 지났다. 서울로 올라온 이후에 6학년을 한 번 더 다녔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방학이 되면 외할머니의 집을 찾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난 여전히 그 산을 올랐었지만 가람일 만날 수는 없었다. 꿈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가람이와 만났던 사실을 잊어버릴까봐 매일 노트를 펼쳐 가람이와의 추억을 반복해 적었고 그림으로 그렸다. 그리고, 그 추억은 조그만 동화책으로 출판되었고 나는 어느새 동화작가가 되어 있었다. 우스운 사실은, 가람일 기억하려고 시작했던 것인데 바쁜 일상으로 그 아이는 점점 잊혀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연히 만난 여우비에 가람의 기억이 떠오르기는커녕 갑작스런 비에 짜증을 내기 시작할 무렵,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치매가 시작되면서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된 외할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은 나를 할머니가 살던 집으로 이끌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할머니의 집은 아무렇게나 자란 풀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구멍이 군데군데 뚫린 낡은 문을 열자 삐꺽 소리를 내며 힘겹게 열렸다. 할머니와 동생과 같이 지냈던 작은 방은 먼지와 거미줄로 예전의 따뜻했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내 눈엔 여전히 어린 나와 여전히 어린 동생, 그리고 인자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생생했다.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신발을 벗을 때 갑작스런 바람이 꽃향기를 담고 왔다. 그리고 이내 후두둑 후두둑 소리를 내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은 눈이 부시게 푸르렀고 햇살은 따뜻했다. 

 

‘여우비….’

 

오래된 함석지붕을 가볍게 두드리는 빗소리가 청량하게 느껴진다는 게 신기했다. 하늘을 향해 오른손을 뻗자 빗줄기가 가볍게 손바닥을 간질였고, 빗방울이 손가락을 건드릴 때마다 연주를 하든 까딱까딱 움직였다. 눈을 감고 있자니 어릴 때 만났던 소년이 떠올랐다. ‘아직도 그 아이는 이곳에 있을까, 어쩌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부스럭….”

 

비는 어느새 그쳤고 기분 좋은 소음은 잦아들었다. 그랬기에 생각지도 못했던 낯선 소리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소리가 난 방향을 돌아보니 길게 자란 풀이 움직이고 있었다. 풀들 사이로 노란색의 무언가가 삐죽 올라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게 보였다. 익숙한 모양새였다. 그리고, 발치에 놓여있는 탐스런 산딸기를 보는 순간 점점 멀어지는 노란색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만났다! 드디어 만났어.”

 

노란색 꼬리가 사라질 새라 서둘러 같은 길을 달렸다. 선명한 녹색의 풀 사이로 꼬리의 움직임이 잠시 멈칫 하던가 싶더니 세모난 머리가 쏙 올라왔다. 민경이와 함께 봤던 그때의 모습보다는 좀 더 자라 있었지만 반짝이는 검은 눈망울은 여전했다. 

 

“여우야.”

 

여우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여우야.”

 

여우가 가던 길을 서둘렀다.

 

“넌 가람이지, 여우야.”

 

여우는 다시 걸음을 멈추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이리와, 여우야.”

 

폴짝폴짝 뛰며 달려오던 여우는 내 품에 쏙 안겼다.

 

“넌 여전히 약속을 지키고 있었구나.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가람아.”

 

활짝 핀 태양 아래로 빗방울이 한 방울, 한 방울 여우를 감싸 안은 손등을 때리기 시작했다. 여우가 입을 달싹이는 것 같더니 들릴 듯 말 듯 조그만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어서와.”

 

 

 

 

 

 

 


 

 

 

 

3부작 완료입니다~
후다다닥 글만 올리고 자러 갑니다아...ㅇ_ㅜ

 

 


월담백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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