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Pen Story
 [단편] - 여름 한 뼘, 우유 한 모금 ① [단편 3부작]
[건필]월담백토Oh~No~ 악플은 싫어요~!!
   (2011/07/23 04:27) 추천수 : 46   

 

 


 

 

 

 

 


 


 

"43,240원 입니다. 현금영수증 필요하세요?"  



우유팩 하나를 들고 자기 순서를 기다리던 여름은 귀를 쫑긋 세웠다.

지금 순간을 위해 일주일간 싫어하는 흰 우유를 마셨다.

좋아하는 것이라도 집었으면 좋았을 텐데 맛없는 흰 우유만 고집했다.

이유는 앞에서 계산중인 남자 때문이었다.

부지런히 에코백에 물건을 담던 남자가 지갑을 열며 휴대폰 번호를 불렀다.
















그녀가 그를 처음 봤을 땐

말쑥한 정장 바지에 걷어붙인 하얀 와이셔츠와 군청색 넥타이, 반짝이는 검은 구두가

큰 키, 늘씬한 몸매와 잘 어울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기다란 손가락으로 빗어 넘기면 사라락 하고 흘러내리는 부드러운 머리카락과 시원스러운 웃음은

꼭 여름만이 아니더라도 주변의 시선을 사로잡기엔 충분했다.

읍 단위에 고추농사를 짓는 농사꾼이 대부분인 작은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남자에 대한 소문은

금세 퍼지기 마련이었다.

특히 나이를 불문하고 여자들 사이에서는 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당사자만이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늘 같은 시간에 장을 보러 왔고, 필요한 물건만 사 가는지

준비해 온 에코백에 담는 물건들의 종류는 매일 달랐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빠지지 않고 사는 것이,

여름의 손에서 본래의 형태를 잃어가고 있는 것과 같은 1000mL 용량의 흰 우유였다.

남자의 계산을 마친 계산원이 그녀를 조금만 더 늦게 불렀더라면 흰 우유의 팩쯤은 쉽사리 터져버렸을 터였다.

그녀는 찌그러진 우유를 계산대위에 올려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넋을 잃고 바라보던 남자는 자신의 물건을 챙겨 문을 나서고 있었다.

여름은 남자를 바라보다 정작 자신의 목적을 잊고 말았다.

우연히 마트에서 그를 만난 날, 계산할 때 현금영수증을 받기 위해 휴대폰 번호를 말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 뒤로, 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일주일째 그 남자 뒤에서 계산하기 위해 타이밍을 노려온 노력이 또 하루 허사가 되었다.

오늘도 멀찍이 떨어져 그의 뒤를 쫓으며

산뜻한 걸음으로 앞서 걷는 남자의 단정한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남자가 이 마을에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여름이 다니는 대학의 지난 학기 부터였다.

그 대학의 수학교육과의 강사로 이름도 이미 알고 있었다.

장준영.

원래 이곳이 고향인 그는 집안 사정으로 일하던 서울의 입시학원을 그만두고 시간강사로 대학에 나가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이전과 비해 떨어진 수입이나 활동에 대해서 염려했지만

스스로 만족하는 것인지,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언제나 웃고 있었다.

그의 외모나 부드러운 말투 시원스러운 미소에 대한 소문은 금세 퍼졌고

수학교육과 사무실은 이전과 다르게 늘 학생들로 북적였다.

물론 대다수가 여자였다.

국어교육과를 다니던 여름은 자신에게 수학에 대한 재능이 없다는 것을 질릴 정도로 원망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어준 것은 같은 사범대 건물이라는 것.

운이 좋으면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한숨을 돌리는 그를 독점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런 경우는 가뭄에 콩 나는 경우인데다,

간혹 둘만 있게 되는 상황이 와도 말 한마디 해본적도 없지만 말이다.



저만큼 떨어져가던 준영이 갈림길이 나타나자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녀의 집과는 반대방향이었다.

여름방학을 맞이한 뒤로 그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준영이 슈퍼에서 장을 봐갈 때 뿐이었다.

갈림길에서서 멀어져가던 그가 다른 골목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는 것,

여기까지가 하루 중 그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여름의 발걸음이 무거워 지고 있었다.
















무거운 마음만큼 무거운 소리를 내는 대문을 밀자 마당에서 누렁이를 야단치는 사람이 보였다.



"오빠! 언제 왔어?"

"좀 전에."

"오자마자 누렁이 괴롭히는 거야?"



예전부터 누렁이라면 죽고 못 사는 그녀의 오빠 가을이었다.

하지만 그만의 일방통행 짝사랑이었을 뿐 누렁이는 그런 가을이 귀찮은 듯 피하기 일쑤였다.

어떻게든 훈련 한번 시켜보겠다고 볼 때마다 덤벼들어 괴롭히는데 누렁이도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가을이 아무리 ‘손, 발, 앉아’를 외쳐도 심드렁한 표정을 하고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네 녀석이 안보이니까 그렇지!"



오빠가 두 손을 들어 달려오자 여름이 뒷걸음질을 쳤다.



"싫어! 만지지마! 누렁이 만지고 씻지도 않은 손으로 건들지 마!"

"누렁이 깨끗한데 뭐. 간만에 보는 오빠를 이런 취급할거야!"

"계속 비가 와서 한동안 목욕도 못시켰단 말이야. 냄새나. 저리가!"

"어우야―."



가을이 웃기지도 않는 애교로 달려들자 여름은 서둘러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밖의 소란에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내밀어 살피던 엄마가 들고 있던 국자로 오빠의 머리를 내리쳤다.



"엄마까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내미 찬밥 취급할 거유?"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좋아한다. 그래, 그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오랜만에 집에 와서는 부모님보다 개부터 찾니! 얼른 들어와서 아빠한테 인사부터 해!"

"꼬올 좋다!"



가을은 머리에서 발등으로 툭 하고 떨어지는 묵직한 것의 정체를 보고 엄마에게 소리를 질러 불만을 나타냈다.



"이게 뭐야! 고추장이잖아! 앗, 아야, 눈에 들어갔어. 어떡해!"

"어떡하긴! 얼른 가서 씻으면 되잖아."

여름은 혀를 쏙 내밀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빠에게는 '다녀왔습니다' 한마디만 하고 다시 사라진 가을이 한심한 듯 저녁준비를 돕던 여름이 혀끝을 찼다.



"쯧, 하여간 간만에 집에 왔다 싶더니 금방 사라지네. 씻자마자 어딜 또 나간거래?"

"준영이 녀석 만나러 간다더라."



배추를 씻으며 툭 던지듯 대답하는 엄마의 말에 콩나물을 다듬던 손이 멈췄다.



"준영? 혹시 장준영?"

"그래, 그 준영이."

"엄마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알아?"

"왜 몰라. 옛날에 둘이 좋아 죽고 못 살았잖아."

"오빠랑?"

"그래, 기억 안나? 우리 집에도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몰라! 그렇게 멋진 사람……."



순간 실수 했다 싶은 여름이 입을 닫았다.

하지만 이미 엄마가 들은 뒤였다.

배추를 씻다 말고 뒤돌아보자 콩나물을 다듬던 손길의 속도를 높였다.



"하하하, 얘도 참. 너 초등학교 때 기억 안나? 준영이가 너 되게 예뻐했는데. 하긴 너 처음엔 그 오빠 키도 작고 못생겨서 싫다고 했었지."

"에에에에엥? 그 여드름투성이 오빠?"

"그래, 그래, 여드름 하니까 생각난다. 너 준영이더러 곰보오빠라고 놀렸었어."

"거짓말! 그 얼굴이 그 얼굴이 아닌데?"

"왜, 아니야. 걔네 부모님이 모두 멋쟁이로 소문난 부부였잖아. 선남선녀라고. 양쪽 유전자를 제대로 물려받은 거지. 넌 어렸잖니. 그 나이 때는 눈에 보이는 거만 기억하니까. 네가 여드름 때문에 제대로 기억 못하는 거야. 그때도 여드름이 좀 나서 그렇지, 얼굴 자체는 훈남이었어."

"사기야! 키는? 나보다 한 뼘 정도밖에 안 컸는데. 그때라면 고등학생이었을 텐데 고등학생이 초등학생보다 그만큼밖에 안 컸다면 말 다한 거 아냐?"



어느새 여름의 손은 더 이상 콩나물을 다듬지 않고 있었다.



"얘는 믿지 못하는 거니 믿기 싫은 거니. 성장기의 남자아이들은 무섭다고. 한 달 사이에도 확 변하기도 하니까. 그 집안이 모두 키가 컸는데 걔가 그 키를 유지했겠니?"

"엄마는 어떻게 그 집에 대해 그렇게 잘 알아?"

"몰랐어? 걔네 엄마랑 나랑 초중고 쭉 같이 다녔는걸."



멍하니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생각난 듯 자리에서 일어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럼 그 집에 자주 가고 그러겠네?"

"당연하지. 너 작년 겨울에 맛있다고 먹었던 김장김치랑 열무김치 기억 안나? 그거 준영이네 엄마가 담근 거였다."

"정…말?"

"그럼, 거짓말해서 뭐하게."



엄마는 달라붙은 딸내미를 밀쳐내며 싱크대에 도마를 올리고 무를 썰며 미소를 지었다.



"놀러가자!"



툭 하고 튀어나오는 본심에 엄마가 딸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나도 준영이 녀석 좋아하고 네 녀석 맘을 도와주고는 싶지만 지금 그 집이 손님맞이 할 형편이 아니라서."



엄마는 이미 준영을 좋아하는 딸의 마음을 다 눈치 챈 것 같았다.



"무…슨 일 있어?"



그러고 보니 들리는 소문에 집안사정 때문에 고향에 내려와 있는 거라 했다.

근심이 가득한 딸의 얼굴에 엄마가 웃었다.



"별일 아냐. 네가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



큭큭 웃음을 참던 엄마는 어느새 무를 썰던 손을 멈추더니 이젠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배를 잡고 웃었다.

갑작스런 모습에 거실에 누워 TV를 보던 아빠까지 주방에 모습을 드러냈다.



"너희 엄마 왜 그러냐?"

"모… 몰라요."



엄마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기가 답답했던지 아빠가 입을 열었다.



"당신 왜 그러는 거요?"

"큭큭큭큭, 그 왜, 하하하하하. 아이고, 죽겠네."

"그러다 숨 넘어 가겠소."

"얘, 얘, 여름아. 엄마 물 좀!"

"응!"



여름이 얼른 냉장에고서 찬물을 따라 엄마에게 내밀었다.

차가운 물을 한꺼번에 들이키더니 이번에는 사래가 들렸는지 켁켁 거렸다.



"아, 힘들었다."



여름과 아빠는 보는 자기들도 힘들었다는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식탁에 앉아 숨을 내쉬었다.



"당신도 들었죠, 내 친구 혜미 이야기."



아빠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무릎을 탁 치며 기억해 냈다.



"아아, 알지. 그 집 일 때문에 그렇게 웃은 거야? 사람 참 실없기는."



그러더니 헛헛한 웃음소리를 내며 다시 TV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이 참!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궁금증을 참지 못해 폭발한 여름이 자리에서 일어나 짜증을 부렸다.



"사실은 말이다, 늦둥이를 봤다지 뭐냐."

"……?"

"우리 나이가 54이라고. 그 나이에 임신이 뭐니."



엄마는 다시 웃음기가 번진 듯 큭큭 거리며 배를 잡고 발을 굴렀다.

심각한 일을 생각했던 여름인 온몸에 기운이 쫙 빠지는 걸 느꼈다.



"겨우 그거야?"

"겨우 라니, 큰일이라고 이 나이에 임신하는 건."

"큰일 이라면서 그렇게 웃어도 돼?"

"큰일은 큰일이고 웃긴 건 웃긴걸. 그 지지배도 창피하다며 나조차도 오지 못하게 한다니까. 집안에서 꼼짝도 안 해. 덕분에 준영이 녀석이 여기 내려와 있는 거잖아. 지금쯤이면 8개월에 들어섰을 거야."

"그런 일로 좋은 직장 때려치우고 이런데서 강사나 해도 되는 거야?"

"뭐 어떠냐. 돈이 궁한 집도 아니고, 준영이 꽤 유명한 강사라 여기저기서 데려가려고 한다던데. 당장 서울간다 해도 금방 자리 잡을 녀석이야."

"능력 있는 남자구나."



갑자기 작아지는 목소리에 엄마의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부드러운 미소로 여름의 손을 잡으며 격려했다.



"너라면 괜찮아. 힘내, 딸."

"무슨 근거야 그건."

"엄마의 감!"

"웃겨."



엄마의 미소가 전염된 듯 여름이도 엷은 미소를 띠고 다시 콩나물을 다듬기 시작했다.

 

 

 

 

 






 

 

 

 

 

 

 

               


 


 

 

 

♥ 제목 문구를 만들어주신 狂그녀다래♪ 님 감사합니다!

♥ 표지와, 건필단 문구를 만들어주신 이파운님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단편으로 찾아온 월담백토 입니다.. (__)
많은 분들이 기대해 주고 계시는것 같아서 좀 부담이 되네요..ㅜ
만족스러운 소설이 되어야 할텐데...ㅜ
열심히 썼으니까 그래도 재미있게 봐 주세요.. >_<♥

총 3편으로 구성되어 있구요,
2편은 25일,
3편은 27일 업뎃 됩니다. ^^

지금 한꺼번에 다 보고 싶다고 생각하신 분들은... 제 블로그로.... 쿨럭..;;;

 

 

 

 

 

 

 

 


[건필]월담백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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