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Pen Story
 [단편] - 여름 한 뼘, 우유 한 모금 ② [단편 3부작]
[건필]월담백토Oh~No~ 악플은 싫어요~!!
   (2011/07/25 01:01) 추천수 : 29   






 




 

 






끊임없이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던 세찬 비에 공기가 습했다.

그래서인지 하천주변 작은 공원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일찌감치 저녁식사를 하고 나온 사람들, 친구끼리 만나서 술 한 잔 걸치는 젊은이들,

강아지와 뛰어노는 어린애들, ‘장이야’를 외치며 장기 말을 옮기는 노인네들.

그 누구도 할 것 없이 열대야를 피해 각자의 방법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가을도 하천 둑 한편에 자리를 잡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린다는 게 성미에 맞지 않는지 어느새 사온 맥주 캔을 따서 한 모금 넘기고 있었다.

가로등에 반사된 긴 그림자가 그의 옆으로 늘어졌다.



"뭐냐? 혼자 마시기냐?"

"어, 왔어? 네 것도 사왔으니 됐잖아. 앉아."



봉지에서 맥주 캔 하나를 꺼내며 준영에게 건넸다.



"오랜만이다. 어머니는 건강하시지?"

"응, 펄펄 나신다. 그리고, 오랜만은 무슨, 지난 명절에도 봤잖아."

"그게 본거냐? 얼굴만 비추고는 바로 가버려 놓고는."

"바빴잖아."



준영은 맥주를 한 모금 넘기고 머쓱한 듯 웃었다.



"대학은 어때? 다닐만해?"

"학원 다닐 때 보다야 한가하지만 공부는 더 하는 것 같아. 질문의 난이도나 깊이가 다르니까."

"학원 그만둔 거 후회하지는 않아?"

"후회는 무슨, 원장선생님도 언제든 돌아오면 받아준다 했고, 뭣보다 지금에 만족하고 있어."



어느새 한 캔을 다 비운 준영이 잔디밭에 등을 기대고 누웠다.



"그 소리 들으면 원장선생님이 울겠다."

"울라지 뭐. 크크크."



준영이 소리를 내어 웃자 가을이 그의 배를 베고 누웠다.



"만족한다니까 말인데, 그거 여름이 때문이냐?"



속삭이는 듯, 약올리는 듯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가을이 맘에 안 들어 옆으로 몸을 굴렸다.

쿵 하고 바닥에 머리를 찧은 가을이 일어나 준영을 발로 툭툭 찼다.



"이게 형님 될 사람한테 할 만한 행동이냐."

"다 좋은데 그게 문제란 말이지."



준영은 여전히 웃음기를 담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쭈, 아주 매를 벌어라."



가을은 준영의 목을 잡고 흔들자 서로 한참을 투닥거리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겨우 진정이 됐는지 가을이 맥주 캔을 하나 더 따서 준영에게 건넸다.



"그래, 만나서 얘기는 해 봤어?"

"아니."

"아니? 아직도 얘기 한번 못해봤단 말이야?"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

"같은 건물이잖아. 여러 번 마주쳤을 텐데 아직 말 한번 못해봤다고?"

"응."



가을은, 뭐 별거냐는 투로 고개를 끄덕이는 준영이 한심한 듯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기껏 기대하고 내려왔더니 결과보고가 그게 뭐냐."

"어쩔 수 있나. 여름이가 몰라보는 것 같아. 내가 먼저 나 기억하냐고 못 물어보겠더라. 좀 다가가면 내빼더라고."



준영이 애꿎은 잔디를 뜯어 던져 보았지만 발치에서 툭 떨어질 뿐이었다.



"내빼? 왜?"

"몰라. 복도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방향을 홱 틀어버리는걸. 그러면서도 뒤가 따끔해서 돌아보면 눈이 마주치더라고. 그러다보니까 휴게실 같은데서 둘만 있게 돼도 말 붙이기가 힘들더라."

"관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치? 그런 것 같지? 슈퍼에서도 자주 마주쳐. 꼭 흰 우유 하나씩을 사서 내 뒤에서 계산을 해."

"우유를? 걔 우유 싫어하는데, 특히 흰 우유는."

"그래? 나한테 우유 많이 먹으라고 한 게 여름이었는데. 내가 하루에 한번 우유를 안 먹으면 안되는 게 여름이 때문이잖아."



준영은 과거를 떠올린 듯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기억난다, 기억나. 왜인지 몰라도 네가 키 때문에 고민한다고 생각했었지."

"그러게. 나도 걔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얘길 했는지 모르겠어."

"하여튼 너도 참 징하다. 그 꼬맹이가 무슨 매력이 있다고 초등학생한테 반하냐? 대학교 들어간 뒤로는 만나보지도, 이야기 해 본적도 없으면서. 진심으로 궁금하네. 어떡하면 그렇게 좋아할 수 있어? 인기도 많은 녀석이."

"나도 그게 참 이상해. 지금도 여름이가 꼬맹이인건 여전한데 자꾸 눈에 들어와. 가슴이 뛰어. 지금처럼 제대로 얼굴을 본 게 몇 년 만인데도 여전히 여름이가 좋아."



본래 부모님들끼리도 친해서 종종 왕래는 있었으나 눈인사만 하는 정도였었다.

그때는 동갑인 가을마저도 친구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색한 사이였었다.

거기다 한참 자신의 진로와 성적문제로 고민을 하던 때에 여행을 간 부모님 덕에 친구 집에서 생활해야했는데,

그 스트레스도 한 몫 해 온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가을이나 그의 부모님은 준영을 가능한 이해해 주고 도와주었지만, 어린 여름이만은 하나하나 부딪혀 왔다.

게다가 콤플렉스였던 여드름까지 들춰내며 곰보오빠라고 놀리기까지 하니 예쁜 구석이 무엇하나 없었다.

그 여름이를 이성으로 좋아하게 된 것은 고 2, 그 아이의 이름과 같은 계절이었다.





















여름방학 보충수업이 지겨워 한숨을 돌리려 학교옥상에 올라갔다.

닫혀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옥상의 문이 열리자 한쪽 구석에 몰려있던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교복 넥타이의 색깔을 보니 후배였다.

서둘러 무언가를 숨기는 모습이 역력했다.

꾸벅 인사를 하고 계단을 내려가는 후배들에게서는 담배냄새가 풍겼다.

후배들이 모여 있던 자리에는 수십 개의 담배꽁초가 널브러져 있었고

미처 챙기지 못한 반쯤 남아있는 담배 갑과 라이터가 있었다.

선채로 노려본지 얼마나 됐을까.

불량한 후배들이다, 선생님께 말씀드릴까, 옥상 한편에 빗자루가 있던데 청소나 할까,

담배는 어디다가 버리지? 라이터는 함부로 버려도 되는 걸까? 소각로에서 터지지 않을까 등등

오만 잡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같은 생각을 열 번 쯤 반복한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눈은 담배 갑과 라이터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이 정리되기 전에 몸을 움직이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느새 담배와 라이터는 준영의 주머니에 있었고 서둘러 옥상을 내려왔다.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땀방울이 흘렀다.

호기심 반, 답답한 자신의 고민에서 탈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반이었을 거다.

수업시간 내내 담배가 든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못했다.

초조함에 평소보다 많은 땀을 흘렸다.

수업내용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빨리 종이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나쁜 짓이라는 것은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결심을 실행으로 옮기고 나면 답답함이 풀릴 것 만 같았다.

보충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무도 없는 장소를 찾았다.

그렇게 찾은 곳이 하천 둑이었다.

몇 시간이 더 지나면 열대야를 피해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였지만,

아직은 해가 중천이라 뙤약볕에 나와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가능한 큰길과 떨어진 둑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긴장으로 한번 꼭 쥐어버린 담배 갑이 구겨져 있었다. 담배 몇 개비가 부러졌지만 그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제일 멀쩡해 보이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TV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쉽게 불이 붙지 않았다.

게다가 낯선 연기가 폐로 들어가자 기침이 쉴 새 없이 나왔다.

매캐한 연기가 몸을 도는 기분이 그리 좋진 않았지만, 이상한 고집에 담배연기를 빨아들였다.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도 한 개비를 모두 피우고 말았다.

멍한 기운에 풀밭에 팔을 베고 누웠다.

기대했던 것만큼 뭔가 달라지지도 않았고, 답답한 기분도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죄책감까지 더해져

몸 안 깊은 곳에 어두운 덩어리가 묵직하게 자리를 잡아 버렸다.

몸을 일으켜 담배 갑을 만지작거렸다.

다시 제일 멀쩡해 보이는 담배를 한 개비 꺼내 입에 물었다.

여름이와 눈이 마주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담배피면 키 안 큰대. 오빠 안 그래도 작은데 더 작아지면 어떡해. 고등학생이면서 초등학생 소리 들을지도 몰라. 초등학생인 나보다 이만큼 밖에 안 크면서 그런 거 피면 안 돼!"



그러고 보니 여름이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이 이 길을 지나야 한다는걸 잊고 있었다.

손바닥을 잔뜩 펴 보이며 동그란 눈으로 엉뚱한 소리를 하는 여름이에게 마치 야단이라도 맞는 것 같았다.

깜짝 놀라 담배를 숨긴다던가, 어떤 변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꼬맹아, 사람이란 건 노인네가 되지 않는 이상, 키가 줄어들진 않는다. 그리고 걱정 마. 유전적으로 내 키는 더 크게 되어 있으니까. 도대체가 그런 소린 어디서 들은 거냐."

"선생님이 알려줬어."

"요즘엔 초등학교에서 별걸 다 가르치는구나."



연기를 손으로 쫓으려는 여름이 덕분에 담배를 비벼 끌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만족스러운 표정의 여름이 가방에서 학원의 간식으로 나온듯한 우유를 꺼내 자신에게 줬다.



"뭐냐, 꼬맹이?"

"보면 몰라? 우유잖아."

"이걸 왜 날 줘?"

"담배 끊어서 주는 상이야. 이거 내가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좋아하는 거지만 오빠에게 양보할게. 앞으로도 담배 안 핀다고 약속하면 내 우유는 오빠 다 줄께. 한 모금만 마셔도 키가 쑥쑥 자랄 거야. 그리고 나중에 커서 오빠 신부 해 줄게."



생각지도 못했던 프러포즈에 할 말을 잃은 준영이 코웃음을 치며 여름의 콧등을 손가락으로 살짝 튕겼다.



"쪼그만 게 진짜 못하는 말이 없어. 내가 뭐가 아쉬워서 너 같은 꼬맹이를 신부로 맞이해야하는데."

"오빤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남자는 여자가 결정한 일에 그냥 따라오면 되는 거랬어."

"그러니까…, 네가 결정한 거니까 나는 그냥 너 클 때 까지 기다렸다가 결혼하면 되는 거란 말이야?"

"응!"



여름은, 준영이 자신의 말을 이해한 것이 기특하다는 듯 웃어 보였다.

팔짱까지 끼고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 모습에 준영은 피식 하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학교에서 가르쳐 주디?"

"아니. 엄마!"

"아, 아. 그러냐."

"응!"



다시 한 번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 여름이를 보고 있자니

자신의 행동이 겉멋 든 어린애의 쓸데없는 짓인 것만 같아서 소리를 내어 웃고 말았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볼까지 부풀려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여름이가 귀여워 부푼 볼을 살짝 꼬집었다.



"좋다. 대신에 오늘 일은 비밀이다. 앞으로 담배 안 필 테니까."

"엄마한테도?"

"그래."

"오빠한테도?"

"가을이? 그래. 우리 둘만의 비밀. 약속해."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여름이가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걸어 왔다.



"예쁘게 커야 한다."

"응! 걱정 마! 아빠가 나는 엄청 예쁘게 클 거랬어."

"이번엔 아빠냐."



준영은 손가락을 건채로 큰소리로 웃고 말았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묵직했던 무언가가 쑤욱 빠져 버렸다.

두 사람만의 비밀을 만든 후로 준영과 여름은 급격히 가까워졌고,

가을과 둘도 없는 친구가 된 시기도 그즈음이었다.
















맥주에 취하기라도 한 걸까, 가을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 준영을 바라보았다.

지겹지도 않은지, 아니면 자신에게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 없는 것인지,

이야기를 하는 내내 저 웃음은 여전했다.

서른이 다 된 나이에 어린애 마냥 해맑은 표정으로 웃는 게 조금 부럽기도 해 슬쩍 약올려보기로 했다.



"완전히 당했네. 여름이 옛날부터 우유 싫어했어. 아주 좋아하기는. 먹기 싫으니까 너한테 준거지. 그나저나 어떡하냐, 정작 프러포즈한 당사자는 새카맣게 잊고 있는 것 같으니."



준영이 움찔하는 모습에 조금 고소해졌다.



"그보다 어떻게 좀 해 보라고. 만날 전화해서 여름이가 어쨌네, 저쨌네 하고 보고하길 래 난 또 그사이 뭔가 진전이라도 있는 줄 알았네. 이랬다간 시작도 없이 끝만 볼 것 같다."

"그래야…… 겠지?"



준영은 캔에 남아있던 맥주로 시원스럽게 목을 축인 뒤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난 이 상황이 즐겁거든. 나를 따라오는 여름이도 좋아. 뒤돌아보지 않아도 따라오고 있다는걸 아니까 절로 웃음이 나더라."

"으이그! 하나 뿐인 동생이란 건 스토커 짓이나 하고 있고, 잘난 친구 녀석은 그걸 즐기고 있으니 뭐가 될 턱이 있나. 작작 좀 해. 잔소리 듣는 건 나라고."

"웬 잔소리?"

"몰랐냐? 너희 어머니랑 우리 엄마가 어떻게 좀 해 보라고 아주 안달이다. 아니, 왜 당사자들을 놔두고 나한테 그래?"

"우리 엄마랑 아주머니가? 왜?"

"사귀는 것도 아닌데 아주 공인이야 공인! 너희 사귀기 시작하면 바로 날 잡을걸?"

"농담도."



준영이 가볍게 농담으로 치부해 버리자 가을이 그의 등을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짝' 하는 소리가 시원스럽게 크게 울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쳐다봤다.



"농담 아냐, 자식아! 나 휴가 끝날 때 쯤엔 좋은 소식 좀 안겨 달라고! 알았냐?"

"휴가가 언제까진데?"

"일주일 뒤에는 서울로 올라가야 돼."

"……."

"왜 말이 없어."

"역시 지금처럼은 안 되겠지?"



가을은 준영이 배시시 웃는 모습에 혀를 찼다.



"주변 사람들 다 말라죽는 꼴 보려고 그러냐."

"넌 괜찮아? 하나뿐인 여동생이랑 나랑 사귀어도?"

"너 말곤 안 돼. 예쁘지 않은 동생이라도 네 말처럼 하나뿐인 여동생이야. 너라면 믿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내일부터는 적극적으로 해 보기다?"

"노력해 볼께!"



하천 근처에서는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모여 불꽃을 쏘고 있었다.

가을이 맥주 캔을 따서 준영에게 내밀었다.



"여름이 보고 싶다."

"만날 보면서는…."



여름 강바람에 취기도 기분 좋게 올라서 두 사람 모두 얼굴을 붉히고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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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필]월담백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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