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Pen Story
 [연재] 조우(遭遇) - 07
[건필]월담백토Oh~No~ 악플은 싫어요~!!
   (2012/01/14 22:50) 추천수 : 6   

07 - 아는 사람

 

정훈씨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갖가지 상념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대로는 그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내 복수에는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 고민을 해 봤지만, 결국 휴일 오후에 정훈씨와 약속을 잡고 말았다. 그에 대한 일이 아직 확실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많은 고민으로 가족의 복수를 하고자 한 내 마음이 완전히 갈 곳을 잃을까봐 불안해졌다. 아마, 그를 몰아 부칠 다른 방법을 고민해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난번 명함을 건네받은 뒤로 전화를 하지 않아도 매일 마중을 나와 준 정훈씨를 생각했다. 그 덕에 그와 많이 가까워질 수 있었다. 민경씨의 이야기를 들은 날, 일 때문에 나오지 못한다며 당분간 일찍 퇴근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를 만나는 게 껄끄러웠었는데 다행이라 생각하며 내심 안도하고 있었다.

다음날 퇴근할 무렵, 민경씨는 종이가방 하나를 내밀었다. 어제 약속했던 것처럼 정훈씨와 만날 때 입으라고 준비해 준 옷이었다. 염려했던 것과 달리 화려한 의상은 아닌 듯 보였다. 그녀가 내미는 가방을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받아들었다. '파이팅!'이라고 속삭이며 팔을 들어 보이는 그녀 때문에 마음 한 구석이 켕겨 퇴근준비를 서둘렀다.

 

 

정훈씨와 약속을 한 아침, 민경씨가 준 가방을 열어 보았다. 흰색 탑과 베이지 색 롱스커트, 그리고 연분홍빛 얇은 볼레로였다. 색이 예뻐 사두었다가 신발장에 넣어 두기만한 분홍색 스니커즈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친언니가 이런 옷도 입어보라며 사 준 옷이 몇 벌 있는데 저랑은 안 어울려서 옷 장속에 넣어뒀던 거예요. 전부 한, 두 번 정도 입었나? 원영어니랑 잘 어울릴 것 같은 옷으로 한 벌 챙겨왔으니까 염려하지 말고 가져가요."

라고 웃으면서 말하던 민경씨의 말처럼 거울속의 내 모습은, 옷만 갈아입었을 뿐인데도 사람이 달라보였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빗고 며칠 전에 사다둔 머리띠를 하다가 한숨을 내뱉고 말았다. 조금이라도 그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고 싶어서 신경 써서 골랐던 머리띠였다. 보고 있자니 실소가 나왔다.

 

'이젠 이럴 필요도 없나.'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짓 같아 낮은 서랍장 위에다 툭 던졌다. 커다란 큐빅으로 장식 된 나비모양의 머리띠는 한번 퉁 하고 튕기더니 방바닥으로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다가 멈추었다. 한동안, 멍하니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머리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득 거울로 시선을 돌렸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생각 없이 바라본 거울은, 나를 가운데에 두고 창과 마주하는 위치에 있었는데 그 창에 사람의 얼굴이 보였던 것이다. 얼른 뒤돌아 확인해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평소라면 이렇게 활짝 열어 둘 리 없는데 아침에 청소를 한다고 열어둔 것을 깜빡하고 여태껏 닫지 않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넋이 나간 탓이다.

창은 골목에 있어 열어두면 종종 사람들의 다리가 보이곤 했지만, 항상 조심하느라 잠근 상태였다. 오늘처럼 실수로 열어 두었을 때도 밖에서 사람의 얼굴이 보이려면 쭈그리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누군가 보려고 작정하지 않으면 얼굴이 보일리가 없다는 얘기다.

창문을 열어둔 채 옷을 갈아입고 누군가가 봤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새삼 소름이 돋았다. 지난날의 일도 있고 해서 서둘러 창문을 닫았다. 불투명한 유리창이 햇빛을 난반사 시켰다.

이유모를 피곤함에 맨바닥에 털썩 몸을 뉘였다. 심장이 거칠게 뛰고 있었다. 좋지 않은 방향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스스로를 지치게 했다.

 

 

 

그와 약속을 한건 3,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다. 만나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할지, 지난 이틀간 고민해 봤지만, 아직도 혼란스럽기만 할 뿐, 잘 모르겠다는 대답만 헛바퀴를 돌았다.

 

'역시 친척 아이일까? 남이라면 그렇게 친 가족처럼 다정해 보일리가 없어.'

'그가 진짜로 결혼하지 않았다면 '불륜'은 성립되지 않아.'

'역시.'

'죽이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나.'

'그를 죽이고 나면, 부모님과 동생에 대한 복수가 될까. 이 미안함이 사라질까.'

 

이미 굵어질 대로 굵어진 머리는 더 이상 법으로는 그에게 벌을 가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직접 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던 일 중 하나였음에도, 내 복수심이 어느새 작아진 것인지, 아니면 정훈씨가 '아는 사람'이 되어버린 까닭인지, 나의 살의는 그를 '알아'버린 그날만큼 강하지 않았다. 그때는, 당장에라도 식칼을 몰래 숨겨 정훈씨를 만나 웃는 얼굴을 하고 그의 배를 한 번에 푹 찔러줄 자신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내 손이 떨리는게 느껴졌다.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내 마음을 주저하게 하고 있었다.

서늘한 바닥의 기운을 느끼면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가족들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어떤 모습을 하고 죽었는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을 되감는 와중에 이따금씩, 그가 내가 입원했던 병원에 찾아와 사죄하는 모습이 떠올랐지만, 못 본 척 마음의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리고, 정훈씨에 대한 증오를 새로이 각인시키고 또 각인시켰다.

그렇게 시간을 죽이다 울리는 문자 알림 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출발한다는 정훈씨의 문자였다. 

복잡하던 머릿속은 한결 개운해진 느낌이었다. 옷매무새를 다시 가다듬고, 머리도 새로 빗었다. 그리고 방 한편에 버려진 머리띠를 들어 차가운 마음으로 한번 쳐다보고 정성스럽게 치장을 했다.

 

'어떤 결론이 기다리고 있던,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이 내 복수에도 도움이 되겠지.'

 

건물 밖으로 나서니 초가을의 더위는 여전히 늑장이었다. 햇빛의 온도가 떨어질 줄을 몰랐다. 낯선 의상으로 땀을 쩔쩔 뺄 무렵, 정훈씨가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 너무 예쁘신 것 같아요. 아니, 그렇다고 평소에 예쁘지 않다는 것은 아니고요. 그 머리띠 굉장히 잘 어울려요."

 

여전히 환한 웃음으로 나를 반겨주는 남자,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정성껏 골랐던 머리띠부터 칭찬한다.

 

"오늘 오전까지 넘겨줘야 할 일이 생겨서 급하게 서두느라 마중가지 못해서 걱정했어요. 뭐 이상한 일 없었어요?"

 

조금 전에 창으로 비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내 착각으로 잘 못 본 걸지도 모르고, 지나가다 호기심에 들여다 본 것일지도 모른다. 나만 좀 더 주의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아니, 말한다고 해도 그가 당장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았고, 그의 도움이라면 필요 없었다. 내 자존심만 뭉개질 뿐이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내일이라도 당장 커튼을 달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이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없었어요."

 

쥐어짜낸 웃음을 알아채지 못한 그가 안심을 하며 왼 팔을 내밀었다. 내 불안정한 걸음에 도움을 주려 하는 그에게 못이기는 척 팔짱을 끼고, 오늘따라 유난히 떨리는 입 꼬리를 숨기려 고개를 숙여 머리카락을 내렸다.

겨우 이틀 보지 못한 것뿐인데 정훈씨가 여전히 내 걱정을 해주는 게 고맙기도 했지만, 그 마음을 솔직하게 고맙다고 느끼지 않으려 흔들리는 마음을 묶어버리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내 마음이었다.

팔을 잡은 내 손의 긴장을 그가 눈치 채지 못하길 바라며, 언제부턴가 헤매는 마음을 다잡았다.

웃어주되 진심이 되진 말자.

 

"그럼, 갈까요?"

 

떨리는 미소로 대답하며, 다시 몇 번을 고집스럽게 생각한다.

 

웃어주되 진심이 되진 말자.

 

웃어주되 진심이 되진 말자.

 

웃어주되 진심이 되진 말자…….

 


 

 

 

 

 

 

 





[건필]월담백토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수 추천
28
[잡담] ●저는빅뱅안티입니다 [05]  [7]
권드래용 2008/07/30 11:57 134   10  
27
[연재] [봄빛] Vvvic News pape [8]
VN멋쟁이 2011/02/19 22:43 133   14  
26
[잡담] 엉큼한♥김기범의 초등학생 꼬시기 [1]
§타락 천사§ 2008/03/15 20:00 133   0  
25
[연재] 00● 한 비연 그녀를 믿지마세요! [16]
미친하트ː땡땡。 2008/05/19 19:09 132   8  
24
[연재] (2)그남자의 아찔한 키스과외 [2]
쁘띠마이 2010/03/16 14:09 130   0  
23
[연재] ☞☜ 서울옥탑방 1 [7]
.키키네 2010/07/20 17:16 129   15  
22
[잡담] [빅뱅팬픽]★ 내 남친은 아이돌 [10]
초코하트ː케잌 2008/09/10 15:19 127   6  
21
[잡담] ●저는빅뱅안티입니다 [06] [12]
권드래용 2008/08/09 20:20 124   0  
20
[연재] (1.5)그남자의 아찔한 키스과외 [5]
쁘띠마이 2010/03/01 00:43 122   0  
19
[연재] [봄빛]Vvvic News paper [16]
빈약미소녀 2011/02/19 15:50 116   13  
18
[연재] (1)그남자의 아찔한 키스과외 [2]
쁘띠마이 2010/02/28 00:44 114   0  
17
[잡담] [빅뱅팬픽] 하루하루 _프롤 [8]
초딩그녀、은율 2008/08/16 10:47 114   4  
16
[잡담] 채팅에서만난빅뱅 [02] [3]
간지서방최승현 2008/07/04 17:32 113   4  
→→
[연재] 조우(遭遇) - 07 [1]
[건필]월담백토 2012/01/14 22:50 110   6  
14
[연재] (3)그남자의 아찔한 키스과외 [4]
쁘띠마이 2010/05/27 23:27 110   0  
13
[잡담] [빅뱅팬픽]★내 남친은 아이돌 [16]
초코하트ː케잌 2008/09/07 19:27 110   2  
12
[잡담] [01]Umbrella [17]
하늘하트ː하윤 2008/06/14 10:34 110   18  
11
[연재] (0)그남자의 아찔한 키스과외 [5]
쁘띠마이 2010/02/21 01:10 109   0  
10
[잡담] [02]Umbrella [15]
하늘하트ː하윤 2008/06/18 19:27 107   18  
9
[연재] +난 너 포기못해!+♥③  [4]
Å㉧l슬샘℉ 2008/03/14 18:21 107   6  
8
[연재] Love♡Thema - 005 [1]
[건필]월담백토 2012/01/15 17:54 105   6  
7
[연재] [릴레이] 인연이리 증후군3 [7]
VN가인 2011/02/18 13:26 105   14  
6
[연재] ☞☜ 서울옥탑방 3 [8]
.키키네 2010/08/02 07:37 105   12  
5
[잡담] @ 무용지물 @ 프롤로그 [7]
[건필]이파운 2012/02/13 17:18 104   10  
4
[연재] ☞☜ 서울옥탑방 2 [9]
.키키네 2010/07/22 09:20 103   15  
3
[연재] [릴레이] Espoir Conte 1 [12]
‥* 아몬드 2011/02/17 23:56 101   3  
2
[잡담] 「여기에소설올려도돼죠?」 [5]
  은워령♡ 2010/06/26 09:19 98   0  
1
[잡담] 채팅에서만난빅뱅 [03] [5]
간지서방최승현 2008/07/05 17:44 98   4  
[<< 처음으로 <<]   [마지막 페이지입니다.]
제목 별명 ID        4.45sec